‘경력 평균 28년’ 베테랑 감독 3인의 초보 감독 위한 조언
누구에게나 초보 시절이 있었다. 초보는 수많은 과제와 시행착오를 극복해야 진정한 베테랑으로 거듭나는 법이다. 축구계의 베테랑 지도자들이 자신의 초보 시절을 되돌아봤다. 이들의 경험은 분명 지도자의 길로 막 들어선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직종이다. 해야 할 일도 많고 책임감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초보 감독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전까지 코치로 충분한 경험을 쌓았다면 그나마 수월할 수는 있어도 막상 감독이 되면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다.
초보 감독의 시행착오는 쌓이고 쌓여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축구계 베테랑 지도자인 전주대학교 정진혁 감독(34년 차)과 부평동중학교 신호철 감독(29년 차), 대전한국철도축구단 김승희 감독(21년 차)도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이들은 이제 지도자로 새 출발을 하는 후배들이 조금 더 자신만의 철학을 분명하게 정립하기를 원했다. 또 진심을 가지고 지도자 생활을 해야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빠른 수정이 필요할 때
감독이 되면 자신의 축구 스타일을 팀에 녹여내는 것이 우선이다. 훈련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팀 운영 규칙을 짜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새롭게 틀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다. 자신이 생각했던 내용과 현장에 나갔을 때 체감하는 것과의 괴리감이 느껴질 때 감독은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다.
정진혁 감독은 자신의 초보 시절을 예로 들었다. 정 감독은 “감독이 되기 전 2년 정도 코치 생활을 하면서 내가 모시던 감독님 밑에서 훈련 방식이나 훈련 프로그램 등 많은 것을 배웠다. 감독이 된 후에는 이제 나만의 축구를 펼치겠다는 생각에 모든 면에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팀을 운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국대회에 나가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정진혁 감독은 자신의 훈련 방법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봤다. 정 감독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싶어서 많이 좌절했다. 어디를 고쳐야 하고 어디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시행착오였다”고 이야기했다.
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빠르게 노선을 틀어야 한다. 정진혁 감독은 “이전까지 체력 훈련 위주로 많이 뛰는 것만 시켰다면 그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한 후에는 변화를 줘야 했다. 볼을 가지고 체력 훈련을 하고,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으로 선수들의 임기응변 능력을 키우는데 집중했다. 이 방법이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색깔이 있을 것이다. 이 색깔을 바탕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나갔을 때 어딘가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큰 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변화를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
신호철 감독은 “성인까지 축구를 한 경우에는 눈높이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 상태에서 은퇴 후 아이들을 가르치면 시행착오가 생긴다. 내가 운동했을 때와 지금은 환경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팀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 없이 나의 높아진 눈높이에만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한다면 분명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라고 표현했다.
김승희 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김 감독은 “초보 지도자는 자신이 배운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막상 현장에 나가보면 다른 면이 더 많다. 그 상황을 인지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내가 배운 것만 적용하려고 하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축구팀도 직장...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이유
커뮤니케이션도 다수의 초보 감독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축구도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다. 감독은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 학부모 등 다양한 사람들과 얽혀 있다. 이들과 함께 ‘원팀’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철학과 의지를 분명히 인지시키고 믿음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김승희 감독은 코치들과의 관계를 예시로 들었다. 김 감독은 “현재 코치들은 내 후배들이지만 내가 감독으로 승격한 후에는 이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데 집중했다. 무엇보다 우리 팀은 비전을 가진 팀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했다. 여기는 월급, 수당 등 금전적인 면과 환경 등이 포함된다”고 이야기했다.
축구팀도 감독과 코치들에게는 엄연한 직장인 만큼 일할 맛이 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팀을 운영할 수 있다. 김승희 감독은 적극적으로 코치들의 처우 개선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코치뿐만 아니라 나아가 선수들의 처우 개선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학부모들에게는 강한 믿음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정진혁 감독은 1년에 한 번씩 가지는 학부모들과의 면담을 통해 이 같은 점을 분명히 인지시킨다. 정 감독은 “과거에는 지도자가 절대 권력의 소유자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학부모들의 도움으로 운영하는 팀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팀을 깨끗하고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진혁 감독의 생각이었다. 정 감독은 “학부모들과의 면담 때마다 감독이 갑이 아니라 부모님들이 갑이라고 강조한다. 무조건 감독에게 순응하다 보면 부정한 일도 많이 생길 수 있다. 학부모들이 ‘내 아이는 이 팀이 아니어도 언제든 뛸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가져야 서로 떳떳해지고 자기할 일에 충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부심과 유연함, 감독의 조건
선수들을 잘 지도해 좋은 성적을 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지도자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다. 극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감독은 자부심 없이는 일을 오래 하기 힘들다. 즐거워야 책임감도 높아지는 법이다.
신호철 감독은 “나는 지도자라는 직업을 너무나 사랑한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금이 행복하다. 그래서 훈련도 직접 하고 있고 아이들과 같이 뛰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많은 지도자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믿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할 것이 없어서 지도자를 한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지도자는 교육자인 만큼 진심 어린 마음으로 선수들을 대해야 한다. 특히 유소년 지도자라면 말이다. 자신의 모습이 언제나 선수들에게 투영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신호철 감독은 “간절함 없이 그저 ‘축구 쪽에 자리 없어요?’라고 물어보는 후배들을 만나면 그러지 말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만큼 책임감 없이 그저 발만 담그는 것은 좋지 않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일하겠다는 사명감 없이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연함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자신에게 맡겨진 이상 최선을 다해 가르쳐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약 발전 가능성이 없을 때는 빠르게 다른 길을 찾아주는 것도 지도자가 할 일이다. 초보 감독들은 이를 어려워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발전을 먼저 생각한다면 언젠가는 부딪혀야 할 일이다.
정진혁 감독은 “축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초보 감독들이 이를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며 “발전 가능성이 없는데도 무조건 붙잡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학업으로 진로를 전환했을 때 성공할 수 있다면 그 길로 인도를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두가 성공할 수 없는 만큼 빠른 결정과 지도가 선수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주시민축구단 소속으로 현역 최초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한 오태환도 전주대학교 시절 빠르게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덕분에 든든한 직장을 얻게 됐다.
정진혁 감독은 “지도자는 자기 자리에 연연해 축구 선수들을 이용하려는 경우가 있다. 그런 마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며 “우리 팀에는 오태환과 같은 케이스가 꽤 많이 있다. 선수가 프로에 진출할 가능성이 없다면 빠르게 전환해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감독이 해야 한다. 그래야 선수가 방황하는 것을 막고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도록 만들어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3월호 'LEADERSHIP'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ONSIDE 3월호 보기(클릭)
글=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
-자료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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